March 2005
아주 짧은 여행
참 으로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5년 만이다. 미국에 온 지 어언 17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그 동안 1, 2번 정도 방문했을 뿐이다. 이번 여행은 사업 때문에 아주 짧은 일정이어서 다른 개인적 일정을 잡지 않았다.
먼저 공항에서 나와 시내로 향하는데 생소한 광고들이 눈에 들어왔다. ‘국제결혼 전문’이라는 광고판이 한두 군데가 아닌 여기저기 서 있었다. 월남여자, 중국여자, 태국 등등 하면서 러시아여자라는 글귀도 있었다. 어허, 한국이란 나라가 이렇게 변하고 있구나.
참으로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내가 이곳에서 자란 모습들이 스쳐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미군들을 쫓아다니며 “김미 검, 김미 검” 하던 철몰랐던 초등학교 시절, 검은 교복에 빡빡 머리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남에게 따가운 시선과 놀림을 받았던 기억, 또 대학 시절 교내활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사귀었던 것과 졸업 후 취직하기 힘들어서 몇 년의 세월을 허송하면서 술로 보내던 것, 취직이 안 되니 할 수 없이 조그만 소품 공장을 차려서 우리집사람과 함께 탈, 연극무대 소품, 방송국(TV) 소품 등을 만들어 납품했던 것도 생각났고, 납품할 때면 웬 미국인이 페인트로 범벅이 된 옷을 입고 이상한 물건(소품)을 들고 다니느냐는 듯 이상하게 바라보던 시선 등의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면서 우리 혼혈인보다도 우리를 낳아 기르시던 그 어머니들의 모습도 눈에 아른거렸다. 그들 어머니들이 우리보다 더 고통 가운데, 눈물 가운데, 또 인내 가운데 그 아들딸을 지키고 키웠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지금은 이렇게 변하여 외국인들을 일부러 불러들여(import) 각국의 인종을 만들고 그들과 함께 한국을 이끌어갈 것이니 참으로 세월의 흐름이 무섭다는 생각이 났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 혼혈인들은 선구자의 역할을 했으니 이제부터라도 자신감과 포부를 마음껏 펼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집에 도착했다. 처남이 마중 나와 여장을 풀기 전 저녁으로 추어탕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푹 잤다. 다음날 남대문 시장을 찾아 시장을 한바퀴 도니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또 상인들의 입에서 각종 외국어가 쏟아져 나왔는데 일본어, 영어 등이었다. 나도 영어로 질문을 받았는데 이제 미국인은 미국인인 모양이다.
12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가정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와 내 생활 터전인 가게에서 이사람 저사람을 대하면서 미국인의 생활에 충실히, 열심히,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고 있다. 37년이란 세월을 한국에서 보낼 때 인고의 눈물과 고통이 있었고, 또한 그 가운데 인내를 배웠다. 그 한국의 모습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지금도 한국에서 갈 길을 몰라 애태우는 그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한 때는 HAPA 클럽(한국혼혈인회)을 만들어 여기저기 모여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직장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미국이란 나라에 갈 수 있는냐 등의 의논을 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미국에 있든, 한국에 있든 그저 열심히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또 언론을 통해 혼혈인 시민권 자동취득 법안의 통과를 위해 노력하는 분들의 얘기를 접하고 이 법이 통과되어 우리 혼혈인들의 인권을 아버지 나라에서 되찾고 인정받게 되기를 바라며, 또 그분들이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그 일을 추진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천기호 /미시간
2005-03-11